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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서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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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관서 지방은 고려 시대 수도권 서쪽 지역, 또는 철령관 서쪽에 위치했던 데서 유래된 명칭으로, 현재는 평안북도, 평안남도, 자강도, 평양직할시, 남포특별시를 포함하는 지역을 지칭한다. 고조선 시대부터 고구려, 발해를 거쳐 고려 시대에 관서도로 불렸으며, 조선 시대에는 평안도로 명명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평안남북도와 자강도로 분리되었으며, 1945년 이후 38선 이북 지역이 소련의 점령 하에 놓이면서 북한의 핵심 지역이 되었다. 관서 지방은 서북 방언을 사용하며, 평양 순안 국제공항, 다양한 철도 노선이 존재한다.

2. 명칭

관서 지방이라는 명칭은 여러 가지 기원을 가지고 있다. 고려 시대에 수도권 서쪽 지역이었던 관내도(關內道)라는 지역명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기원은 고려 시대에 있었던 철령관이라는 관문의 서쪽에 위치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한 필자는 서울 지역과의 거리를 고려할 때 후자의 이론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했다.[1]

3. 역사

관서 지방은 한반도 역사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국가와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발전해 왔다. 고조선 시대에는 철기 문화가 발달하고 대동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를 기반으로 한반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평양은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王儉城)으로 추정된다. 고조선 멸망 후 한나라한사군을 설치했으나, 토착민의 반발로 낙랑군을 제외한 군현은 폐지되거나 요동으로 물러갔다. 낙랑군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잃고 무역 기관 역할만 담당하게 되었다.[2]

고구려 미천왕312년 낙랑군을 점령하여 평안도 일대를 고구려 영토로 편입했다. 이곳은 광개토왕의 남정(南征) 때 전초 기지가 되었고, 427년 장수왕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241년간 고구려의 중심지가 되었다.

668년 신라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며 평양은 도시 기능을 상실했다. 당나라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했으나, 나당전쟁에서 패배하며 요동성으로 옮겨갔고, 이 지역은 한동안 주인이 없는 땅이 되었다.

698년 발해 건국 후, 평안도 지역은 발해 5경 중 하나인 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에 속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해 멸망 후 평양 일대는 다시 무주지가 되었으나, 태조의 북진정책으로 고려 영토가 되었다.

고려 태조는 서경을 황도로 삼았다. 995년 성종은 고려를 10도로 구획하며 서경과 교외 지역을 관서도(關西道)로 정했다. 이후 북계(北界), 서북면(西北面)으로 개편되었다. 1269년 서북면 병마사 기관(記官) 최탄(崔坦) 등이 난을 일으켜 북계 54성과 자비령 이북 서해도 6성을 원나라에 바쳤다. 1270년 쿠빌라이 칸은 자비령 이북 영토를 원나라에 편입, 서경에 동녕부를 설치했다. 1290년 원나라는 고려의 요구로 이 지역을 반환하고 동녕부를 요동(遼東)으로 옮겼다.

조선 건국 후 1413년 태종은 평양의 '평'자와 안주의 '안'자를 따 평안도로 명명했다.[1] 세종 때 4군 6진 중 4군이 설치되어 압록강이 경계가 되었다. 세조 때 무창군과 우예군이 폐지되었으나, 정조 때 무창진이 설치되어 변경을 다시 개척했다.

1895년 을미개혁으로 23부제 시행 후 평안도는 강계부, 의주부, 평양부로 나뉘었다. 1896년 강계부와 의주부는 평안북도, 평양부는 평안남도로 확정되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직후에도 유지되었다.[1]

광복 이후 38선 이북에서 조만식을 중심으로 평남건국준비위원회가 세워졌으나, 소련 군정이 시작되며 한반도 적색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국 전쟁으로 휴전선 이북 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점령하에 있게 되었고, 평양은 북한의 핵심 도시로 육성되었다.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평안북도 서부는 평안북도, 동부는 자강도로 개편되었다. 1949년 신설된 자강도는 대부분 평안북도에서, 일부는 1954년 량강도로 편입된 함경남도 서부 지역에서 분할되었다.

관서 지방은 선천, 정주를 중심으로 서구 사상이 일찍 유입되어 개신교가 전파되었고, 많은 개신교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1] 당시 개신교는 근대화를 지향했던 자립적 중산층에 의해 수용되었고, 이들은 기독교를 통해 나라의 모순을 제거하고 개화를 이룩할 것으로 믿었다.[1] 1907년 평양에서 평양대부흥이 일어나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기도 했다.[1]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관서 지방 출신은 관직에 진출한 사람은 많았지만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은 매우 적어 차별이 있었다.[1] 정조는 《홍제전서》에서 서북인의 등용을 권면하였으나, 실제로 지켜지지는 않았다. 홍경래의 난 또한 서북인에 대한 차별이 사태 발생의 원인 중 하나였다.

3. 1. 고조선

평안도고조선(古朝鮮)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로서, 철기 문화가 발달했으며 대동강 양안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어, 고대 한반도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평양이 고조선의 수도였는지는 불분명하나, 대체적으로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王儉城)으로 추정한다.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나라가 이곳에 한사군을 설치했으나, 토착민의 반발이 심해 낙랑군을 제외한 군현은 모두 폐지되거나 요동 지역으로 물러갔다. 그 이후의 낙랑군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잃고, 무역 기관으로서의 역할만 담당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

3. 2. 고대

고조선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였던 관서 지방은 철기 문화가 발달했으며, 대동강 양안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어 고대 한반도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평양이 고조선의 수도였는지는 불분명하나, 대체적으로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王儉城)으로 추정한다.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나라가 이곳에 한사군을 설치했으나, 토착민의 반발이 심해 낙랑군을 제외한 군현은 모두 폐지되거나 요동 지역으로 물러갔다. 그 이후의 낙랑군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잃고 무역 기관으로서의 역할만 담당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 미천왕312년낙랑군을 공격하여 영역을 점령하면서 평안도 일대는 고구려의 직속 영토가 되었다. 이후 광개토왕의 남정(南征) 때 전초 기지가 되었으며, 장수왕 15년(427년)에 왕이 국도(國都)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면서, 이후 241년간 고구려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668년 신라당나라의 연합군 공격으로 고구려가 무너지면서 평양 일대는 도시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통치하는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세웠고, 이는 나당전쟁의 지휘 기구가 된다. 그러나 나당전쟁에서 당나라가 패배하면서 안동도호부는 요동성으로 옮겨갔고, 이 지역은 무주(無主)의 공백 지역이 되었다.

698년 발해 건국 후, 평안도 지역은 점차 발해에 속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발해 5경 중 하나인 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의 행정 구역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해 멸망 후 평양 일대는 다시 무주지가 되었으나, 태조의 북진정책으로 평양 근교는 고려 영토로 편입되었다.

3. 3. 중세

고려 태조는 서경을 황도로 삼았다. 성종 11년(995년)에 고려를 10도로 구획하면서 서경과 교외 지역을 관서도(關西道)로 정했다. 나중에 5도 양계 중 하나인 북계(北界)가 되었으며, 숙종 7년(1102년)에 서북면(西北面)으로 개편되었다.

1269년(원종 10년) 서북면 병마사의 기관(記官)인 최탄(崔坦) 등이 난을 일으켜 서경을 비롯한 북계(北界)의 54성과 자비령(慈悲嶺) 이북 서해도(西海道)의 6성을 들어 원나라에 투항하였다.

1270년(원종 11년) 쿠빌라이 칸은 자비령을 경계로 삼아 그 이북의 영토를 모두 원나라에 편입하고 서경에 동녕부를 설치하였다. 1290년 원나라는 고려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여 이 지역을 고려에 돌려주고, 동녕부를 요동(遼東)으로 옮겼다.

3. 4. 근세

조선 건국 후 1413년(태종 14년), 평양의 '평'자와 안주의 '안'자를 따서 평안도로 명명되었다.[1] 세종 때 4군 6진 중 4군이 설치되어 압록강을 경계로 하게 되었다. 세조 대에 무창군과 우예군이 폐지되었으나, 정조 대에 무창진이 설치되어 변경을 다시 개척하였다.

3. 4. 1. 근현대

1895년 을미개혁으로 23부제가 시행되면서 평안도는 강계부, 의주부, 평양부로 나뉘었다. 1896년 강계부와 의주부는 평안북도로, 평양부는 평안남도로 확정되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직후에도 유지되었다.[1]

광복 이후 38선 이북에서 조만식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평남건국준비위원회를 세웠으나, 소련 군정이 시작되면서 한반도 적색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국 전쟁으로 휴전선 이북 지역은 모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점령하에 있게 되었고, 평양은 북한의 핵심 도시로 육성되었다.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평안북도의 서부는 평안북도로, 동부는 자강도로 개편되었다. 1949년에는 자강도가 신설되었으며, 이는 대부분 평안북도에서, 일부는 1954년 량강도로 편입된 함경남도 서부 지역에서 분할된 토지로 구성되었다.

3. 5. 근대 개신교 전파의 중심지

관서 지방에서는 선천, 정주를 중심으로 서구 사상이 일찍 유입되어 개신교가 전파되었고, 많은 개신교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1]

당시 개신교는 관서 지방에서 근대화를 지향했던 자립적 중산층에 의해 수용되었고, 이들은 기독교를 통해 나라의 모순을 제거하고 개화를 이룩할 것으로 믿었다.[1] 따라서 관서 지방의 기독교적 전통은 상당히 강하였다.[1] 1907년 평양에서 평양대부흥이 일어나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기도 했다.[1]

3. 6. 역사에서의 관서 출신에 대한 차별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관서 지방 출신자에 대한 차별이 원칙으로 굳어져, 관직에 진출한 사람은 많았지만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은 매우 적었다.[1] 정조는 《홍제전서》에서 서북인의 등용을 권면하였으나, 실제로 지켜지지는 않았다.

이후 홍경래의 난 또한 서북인에 대한 이러한 차별로 인해 불만이 축적된 것이 사태 발생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4. 지리

관서 지방은 동쪽에 함경남도, 남쪽은 대동강을 경계로 황해도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서쪽은 서조선만을 끼고 황해와 접하고 있다.

관서 지방에서 가장 서쪽은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속하는 마안도 서단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극서 지역이다. 가장 남쪽은 평안남도 남포시 남단이며, 가장 북쪽은 자강도 중강군 중강진 북단이다.

5. 문화

관서 지방은 서북 방언을 사용하며, 한국의 다른 지역과는 문화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인다. 북한은 전통적인 한국 문화와 가치를 중시하는 반면, 대한민국은 개방된 국경과 세계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세계화를 겪고 있다.

5. 1. 명소 · 관광 · 유적

5. 2. 방언

서북 방언을 사용한다.

5. 3. 식문화

평안도는 산세가 험하지만, 일부 평야 지대에서 밭 재료, 해산물, 산채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겨울이 길어 겨울 음식 문화가 발달했으며, 동치미가 대표적이다.

5. 3. 1. 주요 음식

평안도는 산세가 험하지만, 평양 부근 등 일부 지역에는 평야 지대가 있어 밭에서 나는 재료와 해산물, 산나물을 주로 사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겨울이 길어 춥고 긴 겨울에 먹는 음식들이 푸짐하다. 김치는 동치미가 일반적이고, 여러 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6. 교통

관서 지방은 철도와 항공 교통 수단을 갖추고 있다. 항공편은 평양 순안 국제공항을 이용하며, 철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관할 하에 여러 노선이 운행된다. 주요 철도 노선으로는 평부선, 평의선, 평덕선, 평라선, 평남선, 평북선, 만포선 등이 있다.

6. 1. 항공

관서 지방에는 평양 순안 국제공항이 있다.

6. 2. 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관할 하에 여러 노선이 있다.


7. 행정 구역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행정 구역상 평안북도, 평안남도, 자강도, 평양직할시, 남포특별시를 포함한다.[1] 대한민국은 북한의 행정 구역 개편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북5도위원회를 통해 평안북도평안남도에 대한 명목상의 행정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도 (道/도)[1]
한자한글로마자 표기매큔-라이샤워약칭소재지
평안북도平安北道풩안북도Pyeonganbuk-doPyŏnganbuk-do평북 (平北/평북)신의주
평안남도平安南道평안남도Pyeongannam-doPyŏngannam-do평남 (平南/평남)평성
자강도慈江道자강도Jagang-doChagang-doN/A강계



북한 5도 위원회에 따른 도
지도소재지도지사
평안북도신의주양종광
평안남도평양조명철


8. 주요 도시

도시명설명
평양직할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신의주시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
평성시평안남도의 도청 소재지
강계시자강도의 도청 소재지
남포시
순천시
안주시
만포시


참조

[1] 논문 관서지방 (關西地方) https://encykorea.ak[...] Academy of Korean Studies 2024-05-30
[2] 웹사이트 Korean Mythology — Dangun and the founding of ancient Korea https://nor.mofa.go.[...] 2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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